기사는 자기의 성과 자기 아내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었다. 대개의 귀부인은 자기 처지에 분개하여 궁정풍 연애라는 새 생각을 품었는데, 이것은 12세기에 각지를 연애하는 음유시인에 의해 번졌다. 사진은 15세기 플랑드르에서 만들어진 장식용 방패로 기사 뒤에 보이는 죽음의 사자의 모습은 항상 죽음에 직면에 있는 기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토너먼트에는 관중이 따른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귀부인의 존재다. 출장기사는 그녀들에게 자신의 솜씨를 보이려고 애쓴다. 귀부인도 뛰어난 기사가 있으면 그에게 마음이 쏠린다. 그래서 토너먼트는 귀부인 숭배나 궁정연애의 싹이 트는 다시없는 온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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