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갤러리/Middle Ages

카노사의 굴욕

WOO JONG HAN 2006. 4. 7. 00:47

 

기독교는 프랑크왕국과 같은 강력한 후원세력을 얻어 서유럽 전역에서 그 교세를 확대시켜 나갔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교회나 수도원은 세속군주 및 봉건귀족들로부터 많은 토지를 기증받아 정치적으로도 그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이처럼 교회세력이 물심양면으로 성장하면서 교회세력, 특히 로마교황과 세속군주들 사이에 많은 마찰이 생겨나게 된다.
성직자가 세속적인 질서 속에 편입된 이상, 성직자의 서임과 성직수행과정에서는 종교적 요인보다 세속적인 요인이 더욱 중시되었고 성직자의 저질화와 부패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성직자 부패의 대표적인 현상은 성직자의 결혼 및 성직매매였다.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에 대한 문제 제기는 10세기 초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교회개혁운동에 앞장선 대표적인 수도원은 부르군디지방의 클뤼니 수도원이었다. 개혁적인 수도사들은 성직자의 결혼과 성직매매라는 타락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세속지배자들에 의한 성직자의 선출에 있음을 강조했다. 교회는 이를 토대로 성직자 서임권이 교회에 있음을 밝히고, 세속군주들과 서임권문제를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의 귀결점이 카놋사의 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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